2010.3.30.
위치 합천군 가회면, 산청군 차황면 상법리
코스 영암사지-모산재(767m)-산성터-무지개터-구철쭉제단-산불감시초소 정자-비단덤(885ㅡ)-천황재-828봉-감암산(810m)-707봉-느리재-수리봉-배넘이재-부암산(695.6m)-절터샘-부암사-이교마을
거리및소요시간 약16km 7시간
○ 영암사지
영암사지 : 사적 제131호.1964년 지정. 면적 3,812m2. 黃梅山 남쪽 기슭에 있으며, 영암사라는 절 이름도 주민들 사이에서 구전되어 오지만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탁본으로 남아 전하는 <적연국사자광탑비(寂然國師慈光塔碑)>(1023년 건립)의 비문을 통하여 고려시대 이곳에 영암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절터에는 금당지(金堂址) ·서금당지(西金堂址) ·중문지(中門址) ·회랑지(廻廊址) 등의 건물터와 3층석탑 ·쌍사자석등 ·귀부(龜趺) ·석조(石槽) ·기단 ·계단 등의 석조물이 남아 있다. 1984년 발굴조사 때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각종 와편(瓦片)과 토기편, 금동여래입상 등이 발견되었다. 현존하는 유구(遺構)와 유물들로 보아 경남지방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유서깊은 대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늦어도 9세기 중엽에 창건되어 고려 말까지 존속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석탑 : 절의 창건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1014년에 적연선사(寂然禪師)가 이 곳에서 입적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절터에는 석탑을 비롯하여 쌍사자석등, 귀부 등 각종 석조유물이 남아 있다.현재 석탑은 금당 앞에 새로 세운 두 채의 건물사이에 서있다.2층의 기단(基壇) 위에 세워진 3층석탑으로 통일신라석탑의 전형양식을 따르고 있다.기단은 각 층의 4면마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본떠 새겼다.탑신부(塔身部)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되어 있고, 몸돌에는 모서리에 기둥을 새겼다.1층 몸돌이 약간 높은 편이며 2·3층은 크게 줄었다.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4단씩이고, 처마 밑이 수평이며 지붕의 경사가 완만한 곡선으로 흘러내려 네 귀퉁이에서 살짝 치켜 올라갔다.탑의 머리장식부분은 전부 없어졌으나, 3층 지붕돌의 윗면에 쇠막대를 끼우던 구멍이 있다.윗층 기단과 1층 몸돌이 약간 높은 느낌은 있으나, 전체의 균형을 잃지 않았으며 각 부재의 짜임새 또한 간결하다.신라석탑의 양식을 잘 이어받고 있으나, 기둥표현이 섬약하고 지붕돌 받침수가 줄어든 점으로 보아 건립시기는 9세기경으로 짐작된다.이 탑은 탑신부가 무너져있던 것을 1969년에 복원한 것이다.
석등 : 1933년경 일본인들이 불법으로 가져가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막아 면사무소에 보관하였다가 1959년 절터에 암자를 세우고 원래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석등은 일반적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하여, 아래로는 이를 받치기 위한 3단의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얹었다.이 석등은 사자를 배치한 가운데받침돌을 제외한 각 부분이 모두 통일신라시대의 기본형태인 8각으로 이루어져 있다.아래받침돌에는 연꽃모양이 조각되었고 그 위로 사자 두 마리가 가슴을 맞대고 서 있다.사자의 뒷발은 아래받침돌을 딛고 있으며, 앞발은 들어서 윗받침돌을 받들었다.머리는 위로 향하고 갈퀴와 꼬리, 근육 등의 표현이 사실적이다.화사석은 4면에 창이 있고 다른 4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조각되었다.사천왕은 불교의 법을 지키는 신으로 당시 호국사상의 목적아래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지붕돌은 8각으로 얇고 평평하며,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자그마한 꽃조각이 솟아있다.각 부분의 양식이나 조각으로 보아 통일신라 전성기에 비해 다소 형식화된 면을 보이고 있어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며, 법주사쌍사자석등(국보 제5호)과 견줄 수 있는 걸작이라 할 수 있다.
귀부(龜趺) 2기 : 영암사터 내의 법당터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각각 남아 있다.영암사의 정확한 창건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 전성기 때의 많은 유물들이 남아 있어 그 즈음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절터 안에는 법당터를 비롯한 여러 건물의 기단(基壇)이 남아 있어 당시의 거대했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귀부는 거북의 모습을 하고 있는 비의 받침돌로, 원래는 그 위로 비몸돌과 비머릿돌이 얹혀져 있었을 것이나, 양쪽 모두 지금은 귀부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동쪽 귀부는 거북의 등무늬가 6각형이고, 비몸돌을 괴는 네모난 비좌(碑座) 주위에는 아름다운 구름무늬가 있다.전체적인 모습은 거북이지만 머리는 용머리처럼 새겼고, 목은 똑바로 뻗어있으며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서쪽 귀부도 6각형의 등무늬를 배열하였고, 등 중앙에 마련된 비좌는 4면에 안상(眼象)을, 가장자리에는 연꽃잎을 새겼다.서귀부는 동귀부보다 얇고 약간 작지만 거의 같은 솜씨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특히 동쪽의 귀부에서는 정교하면서도 강한 생동감이 느껴지고 있다.이 귀부 2기는 각 부 양식이나 주위의 석조유물 등과 관련지어 볼 때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모산재 : 한자의 표기가 된 것이 없고 그냥 모산재로 불리어지고 있는데 그 유래는 모산재의 동남쪽 줄기의 중간 부분에 무지개터 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 안내판을 보시면 그 무지개터에 사시사철 물이 괴어있는 작은 못이 하나 있는데 지금도 그 자리에는 물기가 있고 또, 자생하는 수초를 볼 수 가있습니다. 그 못이 있다는 유래로 '못재' 또는 '못산' 하던 어원이 세월이 흐르면서 '모산재'로 변해 온 것이라 전합니다.
삼라만상의 기암괴석이 만들어놓은 아름다운 바위산 절경이 일품인 모산재에 오르면 그 화려함에 도취하게 됩니다.
황매산철쭉군락지 : 해발 1108m의 황매산은 800m고지에 60만㎡의 전국 최대규모의 철쭉군락지가 형성되어있는 산입니다. 철쭉군락지 아래까지 승용차가 오를 수있다.
○ 묘산재에서 부암산 산행기
봄이 왔지만 봄이 아니로다(春來不似春). 비가 자주오고 황사와 구름, 안개, 스모그 현상으로 가시거리가 짧고 맑은 날이 드물다. 봄을 시샘이라도 하는지 꽃샘추위는 겨울 옷가지를 던져 버리기를 망설이게 하고 산천초목 새싹들이 움츠려 돋아나지 못하고 겨울잠에서 깨어나기를 망설이게 한다.
산을 가까이하면 산을 닮고 강을 좋아하면 강을 닮고 꽃과 대화를 나누면 꽃을 닮은 삶이 되는 것은 우주의 조화다.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경산수화와 가까이 하기 위해 합천 모산재로 떠난다. 부산서부터미널에서 아침7시 합천 삼가행 버스를 타고 기사에게 삼가에서 덕만행 8시30분 마을버스를 갈아 탈수 있는지 여쭈니 가능하다고 한다. 대기마을 지나 덕만마을 전 모산재 고개에 하차하여 영암사지를 돌아보고 계단에 앉아으니 한 구절 시가 떠오른다.(09:10)
영암사터에 앉아 천년 세월에 젖어노니
옛 정취 물씬 풍겨 그 내력 더듬어
고려의 흔적은 사라지고
그 혼만 세월을 지키노라!
수령600년 높이 30미터 느티나무를 지나 영암사지를 돌아보고 뒤편 소나무 숲 향기 길을 걸으며 골짜기를 올라서니 암릉 끝 돗대바위 외롭게 망고의 풍상을 이겨내어 홀로 의연하다. 천길 바위 아래 작은 굴 따스한 햇볕에 앉아 텐트에 며칠간 묵어 세상시름 잊고 훌훌털고 일어나고 싶어라.
협곡에 매가 사냥하여 먹고 남은 시체가 딩글고 낙옆이 쌓여 미끄려져 밟을 곳 낙옆을 밀쳐내고 한발씩 옮겨 능선에 올라선다. 좌측 암릉능선 돗대바위 절경에 취해 떨어지지 않는 발길이지만 가야할 모산재로 발길을 옮긴다.
모산재 넓은바위 정상석이 2개로구나! 하나는 옛 것인데 돌탑 위에 명맥을 유지하고 새로세운 정상석이 사랑을 차지한다. 상공을 맴돌던 까마귀 몇 마리가 바위에 앉아 영역을 침범한 나그네를 쫒아낼 태세다. 순결바위능선을 내려다보니 황포돛대바위와 어우려진 대기저수지 아름다운 풍경이 감동으로 밀려온다.
정상석을 잡고 추억을 남기고 빼어난 암릉미와 대기저수지가 잘 어울린 풍광을 뒤로하고 산성터 전망대에 내려 안내문을 읽어본다.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활동 근거지로서 이곳에 성을 쌓아 왜병과 싸운 격전지로 알려져 있으며 외적의 침략에 항거하여 호국의 일념으로 피흘리며 싸웠던 곳으로 지금도 주변에 싸우다 순국한 이들의 이름 없는 무덤들이 널려 있다.
전망대에서 순결바위 돗대바위 암릉능선을 바라보며 철쭉이 피면 다시 오리라 다짐하며 무지개터에 이른다. 좌청룡 우백호 풍수지리를 모두 갖추었다는 무지개터 연못에 서니 우측으로 비단덤, 누룩덤과 감암산 부암산 암릉이 아름다음을 자랑하고 좌측에 황매산에서 뻗어내린 중봉과 하봉 그리고 삼봉이 날개를 펴고 가운데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 안내문을 읽어본다.
한국 제일의 명당자리로 알려져 있는 곳으로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용마바위가 있어 “飛龍上天” 하는 지형으로 예부터 이곳에 墓를 쓰면 天子가 태어나고 자손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반면에 온 나라가 흉작이 든다하여 명당자리 일지라도 묘를 쓰지 못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모산재에서 황매산 정상까지 2.5km이정표를 지나 안부에 내러 두만마을에서 오르는 삼거리에서 된비알 구철쭉제단에 올라 광활한 철쭉군락지 속에서 철쭉에게 너는 언제 필것이지? 대화를 나누니 5월 중순에 피겠다는 교감을 나눈다.
지척에 황매산 정상과 임시주차장을 두고 철쭉군락지 전망대에 올라서니 여자 산님3분이 앉아서 지나는 산객에게 “차 한 잔 하고 가세요”한다. 다가가 커피 한 잔을 먹고 있는데 “아저씨 저기 구름 위 산 같은 것이 있어요?”하며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지리산 천왕봉과 중봉이 구름 위에 떠 있는 모습이 신비스럽다고 하였더니 진짜 산꾼을 만났다며 먹을 것을 건넨다. 합천을 사랑하는 사모님들! 안전하게 잘 가셨겠지요. 즐거웠고 감사합니다.
철쭉군락지를 바라보며 능선을 따라 비단덤에 서니 함양 산청방향 둔철산, 웅석봉이 아련하고 구름바다를 뚫고 떠 있는 지리산 천왕봉과 중봉은 더욱 가까이 신비롭게 다가온다. 전망바위 소나무 아래 밥공양을 하고 내러서다 60대 산님 한 분을 만나 반갑습니다. 어디서 오셨나요 하였더니 "이 산이 하도 빼어나고 길이 좋아 진주에서 홀로 자주 찾는다"며 상법마을에서 황매산으로 오르는 곳에 폭포가 좋으니 여름철에 찾아보라고 일러준다.
비단덤 자일을 타고 내려 천황재 안부에서 된비알 828봉 누룩덤 갈림길을 지나 무명봉을 오르고 내려 감암산 정상에 올라 칠성바위와 누룩덤으로 뻗어내린 암릉능선을 바라보며 자연의 걸작품에 경이를 표한다. 철계단을 내려 암수바위 내러가니 암수바위가 기다린다.
여자 엉덩이 모양을 한 바위 뒤에 남근이 붙어있는 형상이다. 무명봉에 올라 대슬랩구간을 내려가려다 안전제일주의로 되돌아 내러서니 어느 산악회팀에서 몇 명이 올라가고 있다. 경사면은 올라가는 것이 내려가는 것 보다 쉽다.
무명봉 이정표가 2개 있는데 하나에는 아무련 표시도 쓸모도 없다. 산행 동안 여러개를 보와왔기 때문에 자연경관만 헤치고 흉물로 방치된 전문성 없는 공무원들의 예산낭비 현장의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배넘미재에 내러 노랗게 활짝핀 몇 그루의 생강나무꽃에 다가가 이름을 불러보고 어루만져 보니 "김춘수의 꽃" 시가 생각난다. 그 일부분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웠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사물과의 교감을 생각케하는 시다. 우리는 꽃의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단순한 눈길로 스쳐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꾳과 교감하려면 이름을 불러주어야 나에게로 와서 그 꽃이 된다. 꽃은 그 자체가 침묵으로 답하기 때문에 반드시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 무명봉에서 느리재로 내러가니 산님 5분이 힘들게 올라 와서 반갑습니다. 하였더니 숨 넘어가는 소리로 "반갑습니다" 한다.
마사토에 자라는 아기자기한 소나무 능선길이 이어져 노래가락을 흥얼거려며 걸음 가볍게 가는데 어디에서 애타게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려와 사방을 두리번거려 보니 나무 위에 딱새가 앉아 지저귄다. 지저귀는 소리를 흉내하면 따라하여도 가지 않고 계속 지저귀기는 것을 들으니 머리가 맑아온다. 715봉을 가볍게 올라 안전시설 계단을 내러 배넘이재에서 다시 안전시설물을 잡고 수리봉에 올라선다.
수리봉에 올라서니 조망이 시원하다. 날씨가 흐려 가시거리가 짧아 자굴산 허굴산 둔철산 웅석봉 지리산을 볼 수 없어 안타깝다. 수리봉을 내러 된비알 부암산 정상에 올라서니 이름없는 산악회 정상석이 반기고 그 옆으로 삼각점이 있다. 평평한 바위돌에 앉아 지나온 능선을 바라보며 좌선을 하고 차를 한 잔하면서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어본다.
전망대 2곳을 지나 너덜지대 산수유 몇 그루에 노랗게 꽃이 피어나고 있어 발길을 멈추고 바라보며 올해도 아름답게 피어 좋은 열매를 맺기를 덕담하고 10여분 내러 절터 이정표에서 바위굴로 올라보니 입구 바위에 부암사 창건 이길부 명패가 세겨져 있고 동굴 온돌막에 불을 지핀 흔적이 있다. 바위에서 떨어진 물이 샘을 이루고 있다. 샘에 고인 물보다 더 깨끗한 낙수를 받아 한 모금 먹으니 몸에 생기가 느껴진다. 생각보다 작고 조용한 부암사를 지나 활짝 핀 매화 농원에 앉아 "이심전심" 매실차를 꺼내 한 잔 하면서 시를 한수 읊어 본다.
매화꽃 아래 앉아 골짜기 기운 받으니
봄바람은 간지럽게 눈섭에 머문다.
갈길은 멀고 석양은 뉘엇뉘엇 서산으로 가네
매화꽃 향기에 내마음 실려보내마!
매화꽃 농장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까지 힐끔힐끔 뒤돌아 보면서 마을노인회관에 이르러 산행을 접는다.(15:50) 이 코스는 애매하고 위험한 곳이 없이 대부분 편안한 능선길이다. 한 두 곳에 계단과 짧은 자일이 있고 감암산에서 부암산에 이르는 길은 능선에서 갈림길(2곳)을 만나면 왼쪽 방향을 잡으면 무난하다.
봄산의 향기로운 정기 가득안고 부암산 자락 이교마을 정자에 앉아 쟁기로 밭을 갈고 있는 농부의 “이라 어서가자” 소리, 감자 심는 아낙네 흙 묻은 손과, 굴뚝에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니 평화로움이 밀려온다. 5시 버스를 기다리는 1시간 동안 밭두령에 가서 쑥과 냉이를 켠다.
올 봄 대지에 파릇파릇 돋아난 새싹은 작년의 새싹이 아닌 신비로운 새싹이다. 그래서 자연은 늘 새롭다고 한다. 봄 향기가 찐한 쑥과 냉이로 국을 끓여 가족들과 입맛을 돋어 보련다.
○ 산행 이미지
모산재 들머리 고개
봄을 알리는 생강나무 꽃
영암사지 수령600년 느티나무
영암사지 축대
석등과 삼층석탑
사지터
법당터
대슬랩
모산재에서 본 황포돛대바위와 대기저수지
모산재의 까마귀 비행
돌고래 암릉능선
능선 우측 고래바위
기암괴석 능선
산성터 아래 능선
왕관바위
무지개터
가운데 천황재
순결바위능선
평화로운 대기마을과 저수지
좌측 모산재 정상
황포돛대바위
순결바위능선
황포돛대바위
바위 사면 나무 생명의 끊질김
자갈물린바위(?)
황포돛대바위
철쭉군락지 뒤로 황매산 정상이 고개를 내밀고
철쭉군락지에 찬바람만 불고
산불감시초소와 전망대
철쭉군락지 정상에서 내려다본 계곡아래 대기마을
산청 차황면 상법마을
비단덤에서 본 지리산 조망터(좌측 구름 위로 천황봉이 살짝 떠 있다)
비단덤
감암산에서 본 누룩덤
감암산에서 수리봉과 부암산
대슬랩을 오르는 산꾼을 보고있는 산님들
흉물스러운 안내표시주 예산의 낭비현장
부암산 정상에서 본 지나온 능선(앞 가운데 수리봉, 감암산, 황매산)
기도처 미륵바위 촟에서 흘려내린 촟물
절터샘 떨어지는 물방울 파장
부암사
오늘도 창밖 불빛을 바라보며,
마음의 변덕에 흔들리지 말고,
항상 마음의 주인이 되도록 노력해야 겠다.
- 산에 오르면 몸과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깃털 -
모산재의 오름은 암릉이 아름다워 절로 소리가 나오지요.
저는 가보지못했지만 건너편에있는 부암산이 그리도 좋다는
소릴 많이들었지요 언젠가는 부암산에 한번 가리라 다짐해 봅니다.
깃털님의산행기 즐감 하고 갑니다.
가보면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 것입니다.
감암,부암을 같이 타는 코스나 황매,모산재 코스가 가히 환상적 표현을 써 봅니다.
물론 느끼기 나릅이지만요
가슴에 와 닿는 산이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함께 걸어 볼 날이 오겠지요?
감사합니다.
'산행기 > 경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쭉 일번지 황매산 (0) | 2022.09.22 |
---|---|
하동 황장산 촛대봉 종주 (1) | 2022.09.19 |
미녀산 답사 산행 (0) | 2022.09.18 |
창녕 함박산,종암산,덕암산 종주 (0) | 2022.09.18 |
창녕 영취산 암릉미 산행 (2) | 2022.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