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걷기

해안선 온산 울산 구간

기틀 2022. 9. 6. 21:56

동해안절경 걷기 11차(하산 구간)

 2011.8.3.

 위치 울산시 남구, 용연중공업단지, 온산공단, 진하

코스 : 장생포고래박물관-울산화력발전소-신항배후단지1공구-신항만일반부두삼거리-콘테이너더미널-처용암-개운포성지입구-개운교-개운교 아래 제1가식장-처용암건너 농가-성진지오텍-에스오일공장-온산세관감시소-새진중공업앞-KG케미칼-온산역사거리-현대미포조선온산공장입구-온산역-이영산업계당월공장-한국제지-군부대진입로 아래길-우봉항-강양어촌계제1종공동어장-명선교

거리및소요시간 약24KM, 8시간

 

태화강역 버스정류장에 장생포 행이 없어 택시를 이용하여 고래박물관에 도착하여 주변을 돌아보다 큰 비석 앞 장생포타령을 읽어본다.

장생포 타령(시인 노영수)

 

 장생포 곤여는 오행이 골고루 곤궁하지 않고 정재가 있는곳 앞산은 치마산 고향 마을 보살피고 새끼고래 수백마리 펄떡 뛰고 춤추면 다칠까 돌고래 휩싸서 들이고 파도는 해안 따라 삥둘러 에워싸고 나팔소리 오색끈을 허리에 매고 작은배 큰배 고기 잡아 돌아오면 당산 할머님 좋아하는 곡차도 올리고 밤새도록 포경선 지켜주는 골메기 신장님

 

 공단지역으로 해안선을 걷는 별 의미가 없어 건너편 화력발전소 있는 곳으로 택시를 이용하여 울산화력발전소 옆 용연부두 바닷가로 향한다. 택시기사는 장생포와 용연은 보기에 지척이지만 먼 거리라고 하면서 울산시에서 연결 다리를 검토하였지만 큰 배가 다니는 문제로 백지화하였다는 이야기 등을 주고 받는 사이에 용연 바닷가에 도착한다.(요금10,700원, 13.4KM)

 

 바닷가는 잠시 걷다가 해안으로 철판울타리가 길게 설치된 도로 따라 가는데  덤프트럭과 굴뚝에서 뿜어나오는 매연으로 어서 벗어나고픈 마음 뿐이다. 용연중공업단지 해안로를 따라 신항만일반부두삼거리를 지나 도로확장공사가 한창인 강변을 따라 처용암에 이른다.

 

 처용암은 개운포항 강 가운데 작은 바위섬으로 암자는 없고 강태공들이 차지 하고 있다. 주변 빈 배 몇 척이 정박하고 있고 타고 건너가려도 배 주인이 보이지 않는다. 건너 가지 못한 아쉬음을 안고 소공원 정자에 낮잠 자는 근로자들 옆에서 처용암 풍광을 담고 안내판을 읽는다.

 

 1997년 10월 9일 울산광역시기념물 제4호, 울산시 남구 황성동 668-1번지 세죽마을 앞 바다에 있는 처용암은 신라 헌강왕이 개운포에 놀이를 와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운무가 심해 앞을 볼 수 없었다. 일관(日官)이 말하기를 바다 용의 조화이니 좋은 일을 해주어 풀어야 한다고 했다.

 

 왕이 곧 명을 내려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세우도록 했다. 이곳이 울주군 청량면에 있는 망해사다. 그러자 운무는 씻은 듯이 걷히고 해가 떠올랐다. 그래서 이 지역을 개운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동해 용왕이 크게 기뻐하여 일곱 왕자를 거느리고 바다 위로 올라와 춤을 추었는데 그 아들 중의 하나인 처용이 왕을 따라 경주로 갔다.

 

 그는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고 급간(級干)이란 벼슬을 얻어 나랏일을 도왔다. 처용이 바다에서 올라온 이 바위를 처용암이라 불렀다. 신라향가 처용가비문을 한자한자 되새겨 본다.

 

 東京明期月良 夜入伊遊行如可 入良沙寢矣見昆 脚烏伊四是良羅 二兮隱吾下於叱古 二兮隱誰支下焉古 本矣吾下是如馬於隱 奪叱良乙何如爲理古

 

 서울 밝은 달밤에 밤 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아내)이다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천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무궁무진한 이얘기를 제공하는 처용이야말로 세계적인 문화 콘텐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구 도로를 따라 처용암 표지석이 있는 삼거리를 지나 개운교로 향하면서 울산은 거대한 공단지역이고 건설공사가 활기차게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고 대한민국이 대단한 나라라는 뿌듯함이 머리를 스친다.

 

개운교 위에서 처용암이 있는 개운포를 바라보며 발걸음 멈추고 풍광을 디카에 담고 개운교를 건너 조금 올라가다 좌측 온산에서 두왕까지 국도 공사 부지 절개지를 내러 개운교 아래 비포장도로를 따라 해송과 굴참나무 등이 식재된 제1가식장 아름다운 강변로 풍경에 발걸음이 느리다.

 

 한창 익어가는 복숭아와 배밭 관리를 하지 않아 과실이 벌래 먹고 떨어지고 있다. 인근에 파괴된 건물 한동으로 봐서 개인이 무단으로 과수원을 작영하다가 국유지란 이유로 쫓겨난 것 같다. 농가에 들어가 옥수수 수확을 하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해안길이 있느냐고 하니 '길이 없고 밭두렁 길이 있다'고 하여 뒷뜰 소마구가 있는 밭두령을 따라 잡풀을 헤쳐 비포장로를 따라 온산 두왕 국도공사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성진지오텍 공장 앞 인도를 따라 31번국도를 지루하게 가면서 해안절경을 볼 수 없을까 신경을 곤두세워봐도 공장 길 뿐이다.

 

 공장 굴뚝에서 불꽃이 뿜어 나오고 가스운반 열차가 다니고  송유관이 도로 위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 힘차게 돌아가는 공장의 힘을 느낀다. 온산역 앞을 지나 이영산업기계 당월공장 옆 레미콘회사 진입 도로를 따라 가니 공유수면을 매립한 넓은 광장 저편 해안 방파제까지 펼쳐진다. 공장부지 조성은 산보다 바닷가가 비용이 적게 들어가고 교통 등 여러가지 조건이 좋아 많이 선호하는 것 같다.

 

 해안길이 없어 되돌아 나와 31번 국도 인도를 걷는데 식당도 없고 폭염에 아스팔트와 공장 열기에 땀이 비오듯 한다. 차를 이용하여 공단지역을 빨리 벗어나고자 해도 택시도 보이지 않고 간이 버스정류장은 있지만 버스도 지나가지 않는다. 강렬한 햇볕 차단을 위해 우산과 밀짚모자를 썼지만 등줄기에 실계천이 생겨 옷가지가 젖어진다.

 

더위와 싸움을 하며 걷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휴가 중인 형님과 안부전화를 나누면서 한국제지 앞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이른다. 31호 국도연장공사 현장도로를 올라 삼거리 포장마차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한다. 냉수 두 잔을 연거퍼 먹고 나니 메뉴판이 눈에 들어온다. 회비빕밥과 함께 나온 얼음식혜를 뚝딱하고 나니 아주머니가 '무엇하는 사람이냐'고 한다.

 

 동해안 걷기를 한다고 하니 더운데 공장지대를 다니지 말고 날씨가 선선하면 하라고 조언한다. 옆 산의  이름을 여쭈어 보니 주민들은 '우봉산'으로 부르고 있고 등산로가 있다고 하여 군부대 진입로를 가다 오른쪽 희미한 등산로를 들어가니 묘지가는 길이다. 묘지를 지나니 군부철조망이 둘러져 있고 길이 없어 되돌아 나와 우봉항 해변을 따라 간다.

 

무당 굿소리와 파도소리가 어우려 들러오고 갯바위 낚시꾼과 텐트족 일광욕 모습을 뒤로 하고 해안초소와 군작전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 귀빈횟집 앞에서 하산 등산 들머리로 오른다. 한적한 능선을 올라 갈림길을 지나가니 동굴같은 대나무숲 터널을 통과하여 하산 정상 봉수대에 올라 안내판을 읽는다.

 

 "하산 봉수대는, 사방이 잘 보이는 산봉우리에 위치하여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인근 봉수대와 서로연락하여 변방의 긴급한 상황을 중앙과 해당 진영에 알리던, 옛날 군사통신 수단의 하나이다. 고려시대부터 사용되었던 제도인 듯하나, 그 체제가 정비된 것은 조선 세종 때였다. 오장과 봉군이 배치되어 근무하면서, 평상시에는 한 홰, 적이 나타나면 두 홰,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세 홰. 적이 국경을 넘어오면 네 홰, 적과 접전하면 다섯 홰의 봉수를 올렸다고 하는데, 1894년(고종31년)에 전보통신이 보급되면서 폐지되었다.

 

 하산 봉수대에서 봉수를 받아 남구 남화동의 가리 봉수대로 전했던, 전국 봉수로의 간봉 가운데 하나이다. 이곳에는 지름 4.5m, 높이 2m, 정도의 둥글게 쌓은 연대가 있고 주변의 편평한 자리는 이 봉수대의 부속 건물인 봉대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대 자리에 돌탑이 세워져 있고 주변에는 잔디로 조성되어 있다.

 

봉수대 주변 나무들이 시야를 가려 조망이 뛰어나지 못하나 바다로 침입하는 적을 감시할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능선을 내러 군부대 훈련장 안부를 지나 묘지가 있는 무명봉을 올라선다. 군부대 방향으로 내러 철조망따라 가다 길이 끊겨 긴 나무막대로 가시등 잡풀을 헤쳐 뱀을 조심하면서 100여미터 내러 군부대를 돌아 우봉항에서 해안과 군작전도를 번갈아 가면서 명선교에 이르러 걷기를 접는다.

 

 명선교를 건너 진하버스정류소를 가다 독산 이종수 자선기념비각과 고목 향나무를 보고 버스정류장에서 30여분 기다리며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다. 폭염에 공단지역을 걸으면서 지쳐 물에 빠진 새앙지 모습이 된 것이다. 모자를 썼지만 해수에 반사 된 햇볕에 목과 얼굴이 많이 그을리고  빨갛게 열기를 뿜어져 나왔다.

 

 월내 행 버스 창밖 해안을 보며 오늘 걷기를 되돌아 보니 앞으로 동해 해안절경이 개발과 보존을 잘 조화롭게 하지 않으면 공장, 원전, 부두건설 등 난개발에 밀려 대부분이 사라질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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